어제는 한국에서 엄마가 보내주신 소포를 받았습니다. 

일년에 서너번 정도 받는 엄마의 소포를 받을때면 한국에서 EMS로 소포가 부쳐지자 마자 

저는 추적번호를 입력하고 경호원이 대기업회장 안전 감시하듯 시시각각 소포의 행방을 체크하기 시작합니다. 

인천공항을 출발했군, 뉴욕에서 세관을 통과하고 있군, 음 이제 지역 우체국으로 운송중이군.

우리집에 안전하게 도착하기 전까진 결코 안심할 수도 없고, 좌불안석이 됩니다.


소포에 무슨 고가의 미술품이라도 들었을까요? 귀중품을 미국으로 빼돌려 돈세탁이라도 하는 걸까요? 아닙니다.

하지만 소포에는 분명 귀중한 물건이 들어있기는 합니다.


말로 설명하기보다 제가 오늘 소포로 받은 물건을 보여드리겠습니다.





짜잔~ 바로 이것은~~~ 저희 엄마가 만드신 김치로서, 

미슐랭 3스타 레스토랑을 가도 맛볼수 없는 저에게는 진귀한 고향의 맛입니다.

6년여동안 직접 담그신 김치를 보내주시는 울 어무이~ 

한참 향수병이 시달리던 때에는 소포를 열고 이 김치 냄새를 맡자마자 그 자리에 주저앉아 펑펑 운적도 있었답니다.


어쨌든 오늘은 제가 이 소포때문에 우체국에서 몇년전에 당한 수모에 대한 얘기를 하려고 합니다.

한국 우체국에서 EMS 로 보내면 뉴욕까지 오는데 이틀이면 오는 이 소포는 주된 내용물이 김치이기에, 

보통은 10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좀 쌀쌀한 날씨가 되어야 받는데 지장이 없습니다. 


하지만 문제의 소포가 도착한 때는 무려 5월. 

쌀쌀할때는 쌀쌀하지만, 가끔 이상기온이 발생하면 여름처럼 무더워 질수도 있는 알수없는 달이 뉴욕의 5월인데요. 

엄마가 소포를 보냈다는 얘길 듣고, 이제나 저제나 도착하려나, 시시각각 소포를 스토킹하고 있던 어느 날 오후, 

회사에서 점심을 먹고 나른해져 있을 무렵, 제 핸드폰으로 전화 한통이 걸려왔습니다.


인사 한마디 만으로도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는 걸 알수 있었던 여자의 앙칼진 목소리가 수화기 건너편으로 들려옵니다.


“하이, 당신 이름이 OOO 입니까?”

“맞는데요.”


“지금 당신 이름으로 배달된 소포가 우리 우체국에 있어요.

근데 이거 뭐 쓰레기 썪은 걸 보내기라도 한 건가요?

냄새가 너무나서 아무도 만질 수 없으니 지금 당장 와서 가져가세요.”


갑작스러운 속사포 컴플레인에 당황한 저,

“저는 회사에서 근무중이고, 그 안에 든건 김치인데요.”

라고 답하지만 그쪽에선 눈하나 꿈쩍 안합니다.


“난 그런거 상관안해요. 오늘 중으로 가져가지 않으면 버릴테니 그렇게 알고

지금 당장 오세요”


아니, 이게 왠 날벼락입니까.

우체국에서 전화가 왔다는 것부터가 신기한데 

(한국은 우체국택배 이런데서 배달전 문자, 전화 주지만 미국은 그런거 일절 없거든요)

며칠걸려온 국제 우편을 냄새가 난다는 이유로 버리겠다니..

내 소즁한 김치인데…


뭐가 어찌됐든 간에, 김치 사수를 위해

그당시 어학연수를 하러 뉴욕에 와있던 제 동생에게 부랴부랴 전화를 걸어 우체국에 가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날 저녁 서둘러 퇴근을 하고 집에 가보니.

동생은 제가 들어오자마자 죽일듯한 표정으로 저를 째려보고있더군요.


동생의 말인 즉슨,

김치가 든 소포를 쓰레기 봉투에 담아 우체국 창고 먼 구석에 쳐박아 두었고,

그것을 가져다 줄때도 무슨 바퀴벌레 보듯이 하며 마지못해 질질 끌고와 건네주었다는 겁니다.


욕심을 내서 꽤나 많은 양의 김치를 보내신 엄마 덕분에 

어릴때 TV 에 나오던 차력사 아저씨가 이빨로 힘겹게 자동차를 끌듯이 김치 냄새나는 쓰레기 봉투 한자락을 어깨에 걸친채 질질 끌면서 걸어서 집에오니 

지나가는 사람들이 홈리스 보듯했다고 방방 뛰는 동생.


그런 동생을 뒤로하고 급히 상자의 냄새를 맡아보니 음… 스멜.

미국인이 맡았다면 기절할 만큼 독한 냄새이기는 하더라구요. 

소포가 오는 도중에 김치를 담은 봉지가 터져서 국물이 다 새고 말았는데

김치국물 냄새 + 약간의 더운 날씨 가 가미되어 상한 김치 쉰내가 되어버렸던 것이었습니다.




하루 종일 그 우체국 직원에게 화가 나서 씩씩거렸던 제 마음이 막상 이 냄새를 맡자

조금 누그러 드는 느낌이었습니다. 

김치 냄새에 익숙한 한국인도 이렇게 불쾌한 냄새인데 미국인들은 오죽했을까 하구요. 

그래도 소포를 갖다버리겠다고 협박한것이 잘했단 건 결코 아니지만요.


오랜만에 엄마 김치를 받아보니 한동안 잊고있었던 예전의 에피소드가 생각나 적어봤는데요.

한국인의 김치사랑은 유명한게, 

하물며 미국 공항 세관에서도 김치, 김, 고추장 등의 주요 한국음식 고유명사는 안다고 하더라구요.

그만큼 한국인들이 미국올때 많이들 싸와서 알려졌다고 하는데요.

 

실제로 저도 한국갔다 오는 길에 세관 신고서에

Fermented Cabbage (발효한 배추) 라고 작성해 놨더니, 

음식물을 가지고와서 해야하는 X-Ray 검색대 앞에서 

신고서를 보고 "김치?" 그러더니 그냥 보내준적이 있었어요. 참 신기하더라구요.


이제 한국은 주말이죠? 행복한 주말보내시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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